#01 · Interview

제주어를 잇고 지키는 세 사람

사라져 가는 제주어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 애쓰는 세 사람을 만났다.

세 사람이 지키려는 것은 낱말마다 새겨진 제주 사람들의 삶과 정체성이다.

#02 · Interview

세 사람의 이야기

Interview 01

서로를 다독인 공동체의 언어, “제주어가 ‘튼내어지기를’”

제주어는 어떤 언어인가요.

“외부인들이 보기에 제주어는 투박하고 거칠며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 말을 쓰는 제주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정겹고 따뜻한 언어예요.”

제주어의 매력은 어디에 있나요.

『제주어대사전』 편찬을 비롯해 제주어의 체계적인 조사와 학술 연구를 전담하고 있는 김미진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은 제주어의 매력을 ‘꾸밈없는 진심’에서 찾았다. 청년 인터뷰어들이 ‘조들지 맙서(걱정 말아요)’나 ‘편안하시우과(편안하십니까)’ 같은 인사말에 위로를 받았다고 하자, 김 위원은 제주어 말투에 담긴 속뜻을 풀어 설명했다. 흔히 쓰는 어미 ‘-수다(예: 먹어수다)’는 얼핏 퉁명스러운 반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상대를 높이는 제주 고유의 존댓말이라는 것이다.

후세에 꼭 남기고 싶은 낱말이 있나요.

김 위원은 언어가 사라지면 제주 사람의 정체성도 함께 사라진다고 본다. 과거 제주 사람들이 서로 나누며 살았다는 사실을 청년 세대가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후세에 꼭 남기고 싶은 낱말로는 ‘맹심헙서(명심하세요)’를 꼽았다. 수확물을 이웃과 나누는 ‘개석’, 전통 품앗이인 ‘수눌음’처럼 서로를 보듬던 공동체 문화가 낱말과 함께 이어지길 바랐다.

제주어 기록 작업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요.

그의 기록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1995년 시작된 종이 사전 편찬 작업은 웹사전 ‘제주어 왓’으로 이어졌고, 올 연말에는 이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AI) 다국어 번역 프로그램도 출시될 예정이다. 그는 젊은 세대가 ‘책인?(책 있어?)’처럼 말을 줄여 쓰는 모습도 반갑게 바라봤다.

제주어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언젠가 모두가 표준어를 쓰는 시대가 오더라도, 제주어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튼내어질(기억이나 생각을 되살아나게 하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Interview 02

섬의 역사를 품은 ‘존재의 집’, “언어가 지워지면 문화도 소멸한다”

언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20여 년간 제주의 숨은 향토사료를 발굴해 『탐라록』 등 10권의 고문헌을 우리말로 옮긴 백종진 제주문화원 사무국장은 언어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역사이자 존재의 증거”라고 정의한다. 고전 번역가이자 향토사 연구자인 그는 거센 바람과 좁은 섬이라는 환경이 제주 특유의 억양과 화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제주어 말투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제주어는 옥타브가 높고 극도로 경제적입니다. ‘가서 보고 오너라’는 ‘강방왕’ 세 글자로, ‘왜 그랬어?’는 ‘무사’ 두 글자로 끝나죠.” 거센 바람 속에서도 뜻이 명확히 전달되어야 했던 섬의 환경 속에서 짧고 직설적인 말이 자리 잡은 셈이다.

제주어 낱말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요.

백 국장은 제주어 낱말 하나하나에 제주의 역사가 응축돼 있다고 강조했다. 무더운 여름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더위를 피하던 팽나무 그늘은 제주어로 ‘폭낭 아래’라 불렀고, 제사를 뜻하는 ‘식게’는 옛날 제삿날에 주던 특별 휴가인 ‘식가(式暇)’에서 유래했다. 그는 “언어는 곧 존재의 집”이라며 “‘도깨비’라는 단어가 사라지면 도깨비도 잊히듯, 제주어가 지워지면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도 함께 소멸한다”고 말했다.

제주어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2000년대 올레길 열풍 이후 제주의 고유 문화가 재평가되면서, 사투리를 부끄러워하던 과거와 달리 ‘제주다움’이 환영받기 시작했다. 다만 맥락과 뉘앙스를 고려하지 않고 사전 속 낱말만 짜 맞춘 이른바 ‘엉터리 제주어’가 늘어나는 현상은 경계했다. 언어의 본래 쓰임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제주어를 올바른 맥락 안에서 구사하고, 마을의 진짜 역사를 꼼꼼히 기록해 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Interview 03

각자도생의 시대에 건네는 안부, “너우렁 나우렁 몬우렁”

제주어는 어떤 언어인가요.

다양한 교육과 홍보·전승 사업을 통해 소멸 위기 언어인 제주어의 가치를 알리고 향토문화를 지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정예실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 이사장은 제주어를 단순한 방언이 아닌 탐라국 시대부터 이어져 온 ‘독립어’로 규정한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아래아(·)’ 발음 등 중세 국어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제주어 말투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나요.

반농반어의 고된 일상 탓에 제주 사람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말투는 억세졌지만, 정 이사장은 그 이면에 “끼니를 놓치지 않게 챙기려는 부모 세대의 애틋함”이 녹아 있다고 말한다. 제주어가 사라진다면 꼭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다섯 낱말을 꼽았다.

꼭 남기고 싶은 다섯 낱말은 무엇인가요.

상대를 배려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여지를 남기는 ‘개매양(글쎄요)’, 편히 머물다 가라는 환영의 인사 ‘혼저옵서(어서 오세요)’, 본래의 모습을 지키는 마음인 ‘오고생이(있는 그대로)’, 조금씩 천천히를 뜻하는 ‘요보록 소보록(야금야금)’, 그리고 ‘너우렁 나우렁 몬우렁(너와 나, 모두 함께)’이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제주어가 건네는 따뜻한 삶의 태도다.

요즘 젊은 세대의 언어는 어떻게 보시나요.

현재 40명 규모의 ‘가온누리 합창단’을 이끌며 무대 위에서도 제주어를 알리고 있는 정 이사장은 젊은 세대가 무분별한 신조어와 줄임말에 익숙해지는 현실을 우려했다.

제주어가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시대에 따른 언어의 변천은 수용하되, 가정과 학교의 조기 교육을 통해 세대 간 단절 없이 바른 제주어가 이어져야 합니다.”

귤 가지가 그려진 우표